금번 제3회를 맞는 ‘한양서체와 디자인 공모전’에는 예년에 비해 수준 높은 작품이 더 많이 출품되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Adobe, Apple, MicroSoft, Google 등 해외에도 제공되는 ‘한양의 디지털 서체’를 사용하여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디자인될 수 있다는 것은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경사였다. 일반인은 물론 강원대, 계명대, 동서대, 서울시립대, 연세대, 우송대, 중앙대, 한양대, 한양여대, 홍대 등 전국 각 대학에서 골고루 참여해서 공모전의 열기를 증명해주었다. 특히 대구가톨릭대와 인천가톨릭대는 출품작도 많았지만 수상작 역시 많았다.
대상작 심사 때는 잠시 고민이 있었으나 금상과 대상이 없는 금상으로 구분하기로 해결하고 상금은 관례대로 차기 공모전으로 이월시켰다. 조회수가 많은 작품과 수상작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심사위원의 평가 기준이 트렌드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수상작을 선정할 때는 수상자의 앞으로의 발전성도 고려한다는 점이다.
‘제3회 한양서체와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공모전을 주최해준 한양정보통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금상 “도깨비뜨물”
은상 “함께 우리 한매듭”
동상 “한글을 꽃 피우다”
동상 “2016 힘내라 다이어리”
우선 대상작을 낼 수 없었던 사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본래 대상 한 점, 금상 한 점을 선정할 예정이었고, 최종 공동 금상작으로 선정된 <도깨비뜨물>과 <별별이야기>가 경합을 벌였다. 서체회사 공모전이라는 도의적 측면에는 <별별이야기>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마땅할 것 같았지만, 심사위원 각자의 마음을 정서적으로 움직인 쪽은 <도깨비뜨물>이었다. 타입페이스의 사용에 힘이 있었고, 특견명조가 아니면 대체할 다른 타입페이스가 없을, 타입 선택의 비자의적 필연성도 갖춰졌다. 그러나 타입페이스의 활용의 부각도가 낮다는 점에서, 대상으로 선정하기에는 어떻게도 근거가 부족했다. 그래서 아쉬움을 머금고 제3회 공모전에서는 대상작을 내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은상 <함께 우리 한매듭>은 처음에 수상권에도 진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만큼 작품이 전면적으로 부각되는 시각적 임팩트는 낮았다는 뜻이다. 이 작품을 수상권으로 진입시키고 은상에 오르기까지 심사위원들의 동의를 끌어낸 대목은 딱 하나였다. 파란색 표지에서 한글 음소들이 모여 음절로 묶이는 모습을 매듭으로 표상한 부분이었다. 한국어 한 음절은 대개 형태소 단위와 일치한다. 형태소란 ‘의미를 가진 최소단위’를 뜻한다. 『훈민정음』에도 명시된 바, 음소(聲)는 음성과 음향의 단위이고, 초성ㆍ중성ㆍ종성이 모여 음절(音)을 이루어야 글자에 인간이 말하고자 하는 정신과 의미가 담긴다고 했다. 이런 국어학적 지식의 유무와 관계없이, 한글의 이런 속성을 직관적으로 ‘매듭’이라는 소재로 비유한 것이 적절했다. 이 작품이 은상에 선정된 것은, 앞으로 한글의 속성 자체를 탐구한 작업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격려의 취지가 담겨있다.
동상 <한글을 꽃 피우다>에서, 고딕체를 회전시켜 꽃모양을 만드는 것은 어느 타입페이스로도 가능한 그래픽적 시도이고 참신하지도 않으며 글자의 특성을 잘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훼손하므로 견본집용으로는 적절치 않다. ‘꽃’이라는 글자의 웨이트를 겹친 것 역시 여타 한글 견본집에서 자주 활용되어온 예이다. 이런 안이한 접근에서 수상권에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하는 검토도 있었으나, 동상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동상 <2016 힘내라 다이어리>는 특별할 점이 하나도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상권 밖에 머물러 있었다. 이 작업에 동상이 주어진 이유는 최소한 타이포그래피적으로 삼가는 것이 마땅한 시도들만큼은 거의 보이지 않아서이다.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타이포그래피적인 나쁜 습관들이 드러나는 작업들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동상 수상에 의견이 일치됐다.
마지막으로, 제3회 공모전에서는 앞선 공모전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보이던, 글자를 임의적으로 이리저리 모으고 훼손시켜가며 특정한 구체적인 형상을 만드는 나쁜 습관은 많이 사라졌다. 이 점만큼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금상 “별별이야기”
이 작품은 다양한 굵기를 가진 HY 고딕 A1의 장점을 바탕으로 각각 월별과 관련된 서양 별자리의 이야기를 한글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시도한 점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글자를 통해 별자리를 섬세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한 흔적에 비해 전체적으로 비슷하게 작은 글자크기와, 모두 같은 흰색의 글자는 각각의 별 이미지와 내용을 쉽게 인지하기에는 어려웠을 뿐 아니라, 글자의 크기와 굵기의 강한 대비 차이가 별로 두드러지지 않아 별의 밝기와 이야기하는 억양 표현전달의 애매함으로 지루한 아쉬움을 주었다. 별자리의 핵심 이미지형태가 되는 밝은 글자는 보다 크고 굵은 굵기와 함께 색이 추가되고, 전체적으로 글자 크기가 조금 더 크게 표현되었더라면 별자리의 밝기 및 이야기하듯 한 억양 표현전달의 보다 쉽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럼에도 한글을 통한 실험적 시각 표현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동상 “우리의 일상 그리고 시”
이 작품은 HY 고딕 A1 글자가족을 통해 글자크기와 굵기 대비 등의 활용으로 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시각시의 일종으로 한글을 통해 대담하게 일상의 시를 시각적으로 유도하고자 한 점이 흥미롭다. 시각시가 갖는 특징 중 하나는 어떤 상징을 추상적인 형태로 표현하고자 중심이 되는 단어나 문장을 상징화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글자를 흐릿하고 희미해지는 블러(blur)처리로 무언가 시적인 아련한 표현들을 시도했으나 이는 오히려 애매한 표현으로 시각적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아울러 바탕의 색상과 배경에 따른 글자색과의 애매한 관계, 글자의 크기 변화와 굵기 대비가 거의 없이 단조로운 표현은 이미지로도 내용전달로도 명확하게 유도되지 못한 아쉬움을 주었다. 그럼에도 한글을 통한 시각시의 실험적 시도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은상 “숲 한낮과 한밤이 지나는 동안”
편집디자인은 여러 쪽에 걸쳐 시각화 작업을 하므로 지면에서의 ‘질서와 통일’을 잡는 일을 가장 중요시 한다. <숲 한낮과 한밤이 지나는 동안>은 바로 이같은 기본에 충실함으로써 지면 구성을 안정적으로 끌어간 작품이다. 다만, 아직 학생이다 보니 지나친 의욕이 옥의 티가 되었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이 지면의 집중력을 약화시켰고 곳곳에서 발견된 위험한 함정들이 심사위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매회 지적되는 문제들이 이번에도 반복되었다. 바로 커팅 라인에 대한 고려이다. 편집디자인은 복제가공 과정의 배려가 중요하다. 손접지와 손재단이 아닌 접지기, 재단기에 의존하는 대량 생산물인 점을 감안하면 재단선은 일종의 금기 구역이다. 특히 이 작품의 쪽수 표시 위치를 보면 잘려져 나갈 것 같은 심한 불안감이 심사 과정 내내 불안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 사족을 달자면, 가로짜기 책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책장을 넘긴다. 따라서 왼쪽 면은 짝수 페이지가 오고 오른쪽에 홀수 페이지가 된다.
은상 “독립출판서점 어플리케이션 동네책방”
동상 “그런시집”
입선 “당신을 위한 서울관광가이드북”
입선 “과일허브티”
서체회사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 뭘까. 답은 너무나 쉽다. 글자들의 형태를 얼마나 아름답게, 힘있게 전달하고 있느냐다. 재치있는 아이디어나 화려한 배경, 현란한 타입플레이는 그 다음 문제다. 세번째 공모전에서도 이런 기본 문제가 가장 아쉬웠다. 금상으로 뽑힌 <도깨비뜨물> 정도가 거의 유일하게 서체가 가진 힘을 제대로 드러낸 작업이었을 뿐 이었다.
그래도 몇몇 다른 수상작들의 장단점을 꼽아보자면 이렇다.
은상 수상작 <독립출판서점 어플리케이션 동네책방>은 지금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골라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단순히 공간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공간에서 취급하고 있는 책들까지 볼 수 있게 구조를 짠 점도 좋았다.
동상 수상작 <그런시집>은 글자들의 형태를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좋았지만 지나친 타입 플레이가 눈에 거슬렸다. 이런 습관은 작업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배경에 일관되게 깔려 있는 붓자국도 마이너스 요소다.
입선작 <당신을 위한 서울관광가이드북>은 홍대와 종로라는 지역색에 맞게 타입페이스를 고르고 전체적인 톤을 조정한 점이 칭찬할만 했다. 지도의 완성도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정보를 전달할 때 시각적 편집 능력이 다소 부족해보였고, 지나치게 많은 색을 사용해 산만하게 만든 점이 아쉬웠다.
또 다른 입선작 <과일허브티>는 다소 애매한 작업이다. 완성도 자체는 그닥 나쁘지 않다. 그럭저럭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들 정도의 완성도는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잘된 패키지도 아니고 아주 형편없는 것도 아니다. 아주 뛰어나기 어렵다면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는게 낫다. 실패하더라도 그게 맞는 선택이다.
입선 "그 시절 우리의 이야기”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기준에 따라 크게 갈리기도 한다. 이 작품은 놀랍도록 창의적이지도 않고, 조형적 완성도가 높지도 않지만, 손글씨 폰트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본보기를 알기 쉽게 보여주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쉽게 알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렇다할 개성이 드러나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쉬웠다. 일기장의 디자인이나 ‘참 잘했어요’ 도장은 식상하다. 폰트의 본보기로서 일기장을 택했을 때, 어떤 일기장이 가장 적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드러났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